고용노동부가 13일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 책자를 발간했다.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기업들에 참고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이라고 하지만, 노동부 스스로도 보도자료에서 “대표적인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인 직무급을 중심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임금의 연공성 완화와 함께, 직무·능력에 기반한 임금체계 확산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성과연봉제 탄압의 서막이었던 2대 지침 발표와 다를 바가 없다.

노동부는 책자에서 직무급에 대해 “동일한 직무가치에 대해서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수직계열화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윤율 격차 해소와 초기업단위 교섭이 전제되지 않는 한 절대 실현될 수 없다. 노동부의 주장처럼 직무급이 “서구의 가장 대표적인 임금체계”가 된 것은 이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한국 노동자들의 염원이었음에도 실현되지 못한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의 직무급제 도입은 차별을 고착화시켜 사실상의 신분제를 합법화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정규직은 앞바퀴, 비정규직은 뒷바퀴’라는 자조를 낳은 자동차 공장의 실상을 보라.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은 사내하청이라는 기상천외한 탈법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보장받지 못했다. 단가 후려치기, 물량 밀어내기 등 이윤을 착취하고 손해를 떠넘기는 대기업들의 횡포를 보라. 대기업의 수탈에 의한 이윤율 격차가 해소되지 않으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환상일 뿐이다.

이윤율 격차 해소가 끝이 아니다. 지불능력이 충분한 공공부문을 보라.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에 의해 공공기관에 직접고용되었지만 별도직군으로 편제된 노동자들은 직무급제를 적용받으면서 임금인상의 통로마저 봉쇄된 채 평생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초기업단위 교섭을 촉진해 산업경제 전반에 대한 노동자들의 개입을 적극 장려하지 않는 한, 직무급제는 그 어떠한 양극화 완화의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현대판 신분제로 기능할 뿐이다.

공교롭게도 노동부 발표가 있었던 13일, 금융노조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사노위 금융산업위원회에서는 ‘임금체계 개편’을 합의문에 넣는 문제로 갈등이 빚어졌다. 노동부와 경사노위, 나아가 문재인 정부에 분명히 경고한다.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제대로 고민조차 해보지 않고 당사자들과의 논의도 없이 머릿속의 망상을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려 한다면, 박근혜 정권 탄핵의 불씨가 되었던 노동자들의 대투쟁을 반드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도가 계속된다면 1차적으로 경사노위 금융산업위원회 참여 중단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분명히 밝힌다.

2020. 1. 14.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허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