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공약空約으로 전락할 뻔했던 노동이사제의 불씨가 금융노동자의 힘으로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지부가 이달 말로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 2명 중 1명을 수출입은행 노동자들이 추천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다. 수출입은행 이사는 은행장이 임명을 제청하면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한다. 남은 것은 기획재정부 장관의 결단이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경영참여의 일환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서도 공약했던 제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해 민간기업으로 확산시키겠다”고 약속했고, 당선 이후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금융산업 개혁 방안을 만들기 위해 구성된 금융행정혁신위원회 또한 금융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해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실기했다. 활발한 논의가 오가던 집권 초기,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은 노동자 경영참여를 위한 노동이사제를 집단이기주의의 산물로 몰아붙이며 금융행정혁신위의 권고 또한 무시했다. 노동존중 사회를 위한 대통령의 공약이 부처 장관의 단견으로 사장될 위기에 처했는데 그 누구도 책임지고 나서는 이가 없었고 도입을 위한 최적의 시기는 그렇게 지나버렸다.

그러나 금융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왔다. 노동이사제는 이미 시행 중인 많은 선진국들의 사례를 통해 경영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경영 의사결정의 집행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라는 점이 밝혀져 있다. 특히 공공기관들은 국민에게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본연의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공공성보다 수익성 추구에 기울어진 경영에 내몰려왔다는 점에서 노동자 경영참여는 이를 바로잡을 주요한 수단이다.

이번 한국수출입은행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외이사 추천은 노동이사제의 전 단계로서 노동자 경영참여의 정합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수출입은행장이 노동조합과의 소통을 통해 적합한 인물에 대한 추천을 수용하고,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한국에서 노동자 경영참여의 물꼬를 트는 역사적인 결정이 될 것이다. 다시 오기 힘들 중대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노동조합이 추천한 이사를 선임해 현실로 실현시키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2019. 12. 30.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허권​